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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 단청 공부

사녀도 미인도 여인을 그린 옛날 그림

by 아오_ 2022. 7. 3.

이 그림들의 정의와 특징에 대해 알아보고 화가 김홍도가 그린 이 그림에 대해 살펴봅니다. 또한 조선 시대 이 그림과 관련한 화가에 대해서도 알아보겠습니다.

1. 정의

중국에서 《사녀(仕女)》는 한자어에서 벼슬을 의미하는 사(仕)자와 여자를 의미하는 여(女)자를 사용하여 여성 관리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사녀》가 하는 일은 역사를 기록하는 일이었습니다. 오랜 옛날 중국의 사관은 《우사》와 《좌사》 두 가지로 나누었습니다. 《우사》는 말을 기록하고 《좌사》는 행동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사관은 왕의 말과 행동을 모두 기록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왕은 물론 왕의 부인들에게도 사관을 두었는데, 여성 사관을 두었고 이 사관을 여사라고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쓰는 여사라는 말은 여기서 유래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이 그림은 궁녀나 귀부인 같은 상류층 여인의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중국 당나라 시대에 별도의 소재로 자리 잡았습니다. 중국 송나라 시대에 이 명칭을 가지며 미인을 가리키는 의미가 되었다고 합니다. 중국 명나라 청나라 시대에는 「미인도」와 같은 그림으로 혼용했습니다. 이 그림은 상류 계급의 여인을 그린 만큼 그림에 등장하는 여인의 옷차림과 장신구 등은 화려하며 부채를 들고 있기도 합니다.

2. 특징

일반적으로 왕이나 신하들의 초상화를 그릴 때는 특정한 인물을 그리는데 이 그림은 특정한 인물이 아닌 이상적인 여성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 사람을 그린 일반 초상화와 매우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상적인 여성의 모습에는 외모가 포함되었는데 미인을 그린 것으로 「미인도」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조선 시대 화가 김홍도(金弘道)(1745년~미상)는 중국의 이 그림을 참고해서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우리나라의 「사녀도(仕女圖)」를 남겼습니다.

3. 김홍도가 그린 사녀도(仕女圖)

하단에 첨부된 그림으로 중국의 그림을 우리나라 정서에 어울리게 새롭게 그림을 그렸습니다.  화려하거나 요염한 중국의 《사녀(仕女)》와 다른 소박한 모습의 여인을 그렸습니다. 그가 그린 여인의 모습은 신선에 가까워 보입니다. 얼굴과 손 등은 부드럽게 가는 붓으로 부드럽게 표현하고 의복은 힘이 들어간 느낌으로 얼굴과 대비되게 그렸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그림으로 궁궐의 여인으로 검색이 가능합니다. 이 그림은 중국 당나라 시대 화가 주방(周昉)이라는 사람의 「잠화사녀도」를 참고해서 그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는 글과 그림에 능했는데 특히 궁녀나 귀족 여인의 우아한 모습을 그린 그림을 매우 잘 그렸다고 합니다. 그가 여인을 그린 이 그림은 색을 부드럽게 칠했으며, 옷을 입은 모양이 간소하며, 보살의 모습처럼 단아했다고 합니다. 물가에서 기이하게 생긴 돌 위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는 관음을 뜻하는 《수월관음(水月觀音)》 소재를 처음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동작은 물에 비친 달을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나라 궁중 화가 주방(周昉)의 이 그림은 사람 주변에 배경이 들어가지 않았으며, 학을 같이 그려서 신선이 사는 곳에 있는 것처럼 그림을 그렸기 때문입니다. 그는 보통 여인을 그린 그림에서 하늘거리는 옷을 입은 여인과 농염하며 풍만한 여인을 그렸는데 이 그림에서는 정반대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4. 조선 시대 「미인도」와 화가

우리나라에서 미인을 그린 그림은 조선 중기 이후에 풍속을 그린 그림에서 제대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을 그린 대표 화가로는 김홍도(金弘道)(1745년~미상)와 이인문(李寅文)(1745년~1824년 이후), 신윤복(申潤福)(1758년~미상)과 채용신(蔡龍臣)(1850년~1941년)이 있다고 합니다. 이 그림으로 가장 유명한 그림은 간송 미술관에 있는 신윤복이 그린 그림입니다. 미인의 얼굴은 눈썹이 가늘고 가지런하며 눈이 작고 붉고 작은 입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가 입은 옷을 살펴보면 상의 저고리는 좁은 소매와 짧은 기장이 특징입니다. 매우 짧고 몸의 맵시를 드러내는 상의 저고리와 달리 치마는 매우 풍성하게 그렸습니다. 그녀의 머리는 가체(加髢)를 하여 매우 풍성해 보입니다. 당시의 유행하는 스타일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녀의 손은 노리개를 만지작거리고 있으며 치마 아래로 버선 한쪽을 드러냈습니다. 이인문(李寅文)(1745년~1824년 이후)은 조선 후기에 궁중 화가였으며 동갑인 김홍도(金弘道)와 가깝게 지냈다고 합니다. 풍경 그림에 뛰어났는데 소나무와 대나무를 즐겨 그려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고 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가 그의 대표작인데 비단에 그렸습니다. 대형 작품으로 끝없이 펼쳐진 사계절의 자연과 그 안에서 다양한 삶을 사는 사람을 소재로 한 자연의 풍경을 그렸습니다. 그가 그린 것으로 추정하는 「미인도」를 따라 그린 작품이 온양민속박물관에 있는데 그가 그린 것인지 정확하지 않다고 합니다. 조선 말기의 화가로는 채용신(蔡龍臣)(1850년~1941년)이 있습니다, 그는 양반이면서 화가로 흥선대원군의 초상화와 왕인 고종의 초상화까지 그렸습니다. 그는 조선 초기부터 후기까지 유명했던 전국의 기생을 그린 「팔도미인도(八道美人圖)」를 그렸습니다.

사녀도
사녀도 김홍도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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