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한 돌을 그린 그림의 정의와 의미에 대해 알아봅니다. 괴석(괴이한 돌)을 그린 민화에서 돌과 바위가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이 소재를 잘 그린 화가 정학교(丁學敎)에 대해 알아봅니다.
1. 정의와 의미
신기하고 괴이하게 생긴 바위를 그린 민화입니다. 돌과 바위는 십장생에 속하는 것으로 변하거나 없어지거나 사라지지 않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이 기이한 돌은 오랜 세월 동안 풍화와 침식 작용으로 기이한 모습이 되었는데 오랜 옛날의 신비로움과 신령스러운 기운을 받은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랜 옛날부터 돌과 바위는 하늘과 땅의 기운을 부여 받은 자연물로 인식해왔습니다. 기이한 돌과 바위가 의미하는 불변성이 유교 사회에서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군자의 모습으로 생각되어 학문에 종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림의 소재로 쓰였습니다. 특히 나이가 많은 선비들은 이 기이한 돌을 자연의 축소 한 것에 비유하여 유명한 산으로 여기고 신선의 세계라 여기며 가까이 두고 감상하였습니다. 이를 수석(壽石)이라고 합니다. 현재에도 이 수석을 모으고 감상하는 것을 취미로 하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2. 돌과 바위 상징
돌과 바위는 불변성과 오래 사는 것, 즉 장수를 상징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래 살기 기원하는 그림으로 조선 말기에 기이한 돌과 바위가 그림으로 많이 그려졌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장수 외에도 굳셈과 남성을 상징하였는데 어떤 민화 작품에서는 여성의 골반과 같은 형태를 함께 그려 음양의 화합을 표현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소재는 다른 소재와 함께 그림으로 그려 더욱 풍성한 의미와 상징이 그림에 추가되었습니다. 기이한 돌과 꽃과 나비를 그린 「괴석화접도」는 부부의 화합과 가정의 평온을 상징했습니다.
3. 그림의 역사
이 그림은 중국 청(淸)나라의 화가 왕개(王槪)와 왕시(王蓍), 왕얼(王臬) 삼형제가 쓴 책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과 명(明)나라의 글씨를 잘 쓰고 그림을 잘 그렸던 호정언(胡正言)(1582년~1671년)이 쓴 책 《십죽재서화보(十竹齋書畵譜)》와 같은 책과 중국의 베이징에 다녀온 사신들이 직접 눈으로 보고 왔던 그림에 대한 묘사를 통해서 조선 후기의 문인 화가들에게 퍼졌습니다.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은 이 책이 만들어지는 것을 후원했던 청나라의 유명한 문인이며 부자였던 이어(李漁)(1611년~1680년)의 별장 이름에서 책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이 책은 그림을 그리는 이론과 방법을 소재 별로 잘 편집하여 누구나 쉽게 그림을 배울 수 있는 책이었다고 합니다. 이 책을 보고 그림을 배우고 익히며 따라 그린 조선의 화가들 많았는데 정선(鄭敾)(1676년~1759년)과 심사정(沈師正)(1707년~1769년), 강세황(姜世晃)(1713년~1791년) 등이 있다고 합니다. 《십죽재서화보(十竹齋書畵譜)》는 판화 제작 기술로 만든 책으로 사군자를 그린 그림과 작은 동물을 그린 그림의 색을 칠하는 방법에 특히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이 책은 열 그루의 정도의 대나무를 심고 그 모습을 감상하며 집 이름을 《십죽재(十竹齋)》로 지은 작가가 책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 책 역시 앞서 말한 조선의 화가들이 책의 내용을 읽고 배우며 익혔다고 합니다. 이 그림은 조선 후기에는 정원을 가꾸는 문화와 함께 괴이한 돌을 좋아하는 분위기가 결합하여 유행하게 됩니다. 이 그림의 소재는 소나무와 대나무, 매화와 국화와 같은 사군자와 다른 꽃과 함께 그려졌습니다.
4. 기이한 돌 그림을 그린 거장
이 시대에 이 그림으로 가장 주목할 수 있는 화가는 몽인(夢人) 정학교(丁學敎)(1832년~1914년)입니다. 그는 이 소재를 전문적으로 그린 것으로 유명하여 별명이 《정괴석(丁怪石)》이었습니다. 그는 세로로 긴 화폭에 물을 많이 섞지 않은 짙은 먹의 색, 옅은 먹의 색을 사용하여 수직으로 올라가는 기이한 돌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그가 그린 돌 그림은 구멍이 뚫린 모습의 기이한 돌과 날카롭고 각진 모습의 기이한 돌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의 그림들은 층층이 쌓아 올린 모습의 기이한 돌 형태는 청나라 시대에 글씨와 그림을 잘 그렸던 주당(周棠)(1806년~1876년)의 그림과 청나라 시대에 출간된 「해상명인화보(海上名人畵譜)」 책에 있는 그림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는 서예가 정대유(丁大有)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동생은 사군자와 서예에 능했던 정학수(丁學秀)입니다. 그는 추상적인 괴이한 돌을 눈에 띄게 잘 그렸는데 바위의 특성을 잘 포착하여 문인 스타일의 글씨와 획에서 드러나는 예리하고 담백한 힘과 기운, 입체적인 느낌이 드러나는 개성적인 그림 그리는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대나무와 난초도 잘 그렸다고 합니다. 그의 그림에서 기이한 돌과 바위가 빠지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현재 그의 작품으로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사진의 10폭 병풍이 전해집니다. 그에 의해 크게 유행한 이 그림은 김영(金瑛)과 윤용구(尹用求)(1853년~1939년), 양기훈(楊基薰)(1843년~1911년)과 안중식(安重植)(1861년~1919년), 강진희(姜璡熙)(1851년~1919년)등 문인 화가에게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이 화가들은 수직으로 올라가고 구멍이 뚫리고 각진 괴이한 돌을 그린 정학교(丁學敎)가 그린 스타일을 계승하였습니다. 그의 아들은 서예가 정대유(丁大有)(1852년~1927년)입니다. 정대유(丁大有)도 아버지 그림 그리는 스타일을 이어받아 기이한 돌 그림을 그렸으며, 근대 서예 집단 형성에 기여했다고 합니다.
5. 첨부한 그림
글에 첨부한 맨 위 「괴석도」 병풍은 총 10폭의 화면에 병풍입니다. 이 병풍에는 여러 가지 형태의 기이한 돌을 그리며 대나무, 난초, 매화, 소나무도 같이 그렸습니다. 이 그림에는 위로 솟은 모양 크고 작은 구멍들이 뚫려 있는 모양, 돌 표면에 층이 나 있는 듯한 모양 등 여러 가지 형태의 기이한 돌(괴석)이 여러 폭에 그려졌습니다. 이 그림을 그린 정학교(丁學敎)(1832년~1914년)는 서예가로서도 명성이 높았던 만큼 병풍에 쓰인 글의 구성도 탁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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