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의 정의와 소재인 《도화원기》에 대해 살펴보고 첨부한 그림인 「도원행주도」와 이 그림을 그린 화가 안중식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보겠습니다.
1. 그림의 정의
복숭아가 열리는 나무의 꽃인 복사꽃이 아주 많이 핀 무릉도원(武陵桃源)을 그린 그림입니다. 무릉도원은 동양의 이상향을 의미하며, 한자어 호반 무(武)자와 언덕 릉(陵)자, 복숭아 도(桃)자와 근원 원(源)자를 사용하였습니다. 도원향(桃源鄕), 도원경(桃源境)은 모두 무릉도원과 같은 말입니다. 이 단어는 중국의 진(晉)나라 시인인 도연명(陶淵明)(365년~427년)이 쓴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등장하는 단어입니다. 이 그림은 조선 시대는 물론 근대까지 꾸준하게 그려졌다고 합니다.
2. 그림의 소재 「도화원기(桃花源記)」
그림의 소재인 「도화원기(桃花源記)」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무릉(武陵)》에 사는 어부가 있었습니다. 그 어부는 어느 날, 고기를 잡으러 계곡에 갔습니다. 그리고 복사꽃 꽃잎이 보이자 그는 계곡 깊이 올라갔습니다. 그가 올라간 곳에는 복사꽃 나무가 겹겹이 있는 산속에 둘러싸인 계곡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계속 안에 있는 굴 속을 통과했습니다. 이곳에는 마을이 있었는데 땅이 평탄하고 넓고 집들은 가지런했고 밭은 좋았으며, 아름다운 연못과 뽕나무, 대나무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마을의 길은 모두 통해있었으며 닭과 개가 짖는 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이 마을에 사는 사람 모두가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어부는 이 마을 사람들에게 환영 받았지만, 고향으로 다시 돌아갔는데 다시는 그 마을을 찾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 마을의 사람들은 진나라 시대에 전쟁을 피해서 도망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외부와 단절된 이상향으로 현실에 존재하기 어려운 《도원(桃源)》이 탄생하였습니다. 이 내용은 작가가 살았던 시대부터 이 작품을 비슷하게 따라 한 작품들이 있을 정도로 많은 문학 작품과 회화 작품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3. 첨부한 그림 「도원행주도(桃源行舟圖)」
첨부한 그림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작품입니다. 그림을 그린 화가는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1861년~1919년) 입니다. 이 그림은 위에서 언급한 「도화원기」의 내용을 그린 그림으로 1915년에 그린 그림입니다. 위의 글 내용을 그림으로 묘사했는데 높고 기이하고 복잡한 산이 생긴 모습을 녹색과 분홍색을 화려하게 칠하여 신비롭게 표현했습니다. 이렇게 색을 칠한 산수화 색칠하는 법을 《청록산수(靑綠山水)》 합니다. 산을 군청과 녹청 계열을 사용하여 색을 칠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이 《청록산수》는 천연 광물성 안료를 사용하여 자연을 표현했는데 중국 당나라 시대에 큰 유행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시대에 숙종 왕 시대에 유행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림에 색을 칠하는 것을 의미했으나 후에는 산과 바위를 색칠하는 기법으로 개념이 축소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그림의 산맥은 위에서 아래로 길게 긋는 방식으로 베의 올을 풀어 놓은 것 같은 산수화의 기법인 《피마준(披麻皴)》과 산과 바위, 나무 등에 난 이끼를 표현한 작은 점인 《태점(苔點)》을 그려 표현했습니다. 《피마준(披麻皴)》은 한자어 헤칠 피(披)자와 한자어 삼(Linen) 마(麻)자를 사용하였습니다. 《태점》은 한자어 이끼 《태(苔)》자와 한자어 점 《점(點)》자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림에 등장하는 나무들은 가는 붓으로 세밀하게 묘사했습니다. 이 그림은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산을 감각적이며 화려하게 색을 칠했는데 이것은 중국의 상해에서 유행하던 《사왕(四王)》 스타일의 풍경 그림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특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왕(四王)은 중국 청나라 초에 왕씨 성을 가진 4명의 화가, 왕시민(王時敏)(1592~1680년), 왕휘(王翬)(1632년~1717년), 왕감(王鑑)(1598년~1677년), 왕원기(王原祁)(1642년~1715년)를 일컫는 말입니다. 안중식이 그린 이 그림 외에 《도원》을 그린 그림으로 「도원문진도(桃園問津圖)」(1913년) 가 있습니다. 이 작품은 삼성 리움 미술관에 있습니다.
4. 그림을 그린 화가
안중식(安中植)(1861년~1919년)은 다양한 분야의 그림과 글씨에 모두 뛰어났던 선비 화가입니다. 그의 호는 심전(心田)입니다. 그는 10살 정도에 그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는 자기 친척 중에 왕의 초상화를 그렸던 궁중 화가인 안건영(安健榮)(1841년~1876년)의 집을 왕래하며 그림의 기본을 배웠습니다. 그는 19세 정도의 나이에 조석진(趙錫晉)(1853년~1920년)과 함께 화가 장승업(張承業)(1843년~1897년)을 만나며 기량을 더 많이 쌓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 결과 조석진(趙錫晋)과 함께 왕의 초상화 제작에 참여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는 조석진(趙錫晉)과 함께 새로운 무기의 제조와 그 무기를 다루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중국 톈진(天津)으로 떠나는 사절단을 따라 견문을 넓혔습니다. 그는 중국에서 귀국한 후 우정국에서 일했습니다. 그는 개화파(開化派)와 친했는데 개화파가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실패로 돌아가자 일본으로 1년 정도 몸을 피한 후 다시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는 귀국 후 청계천의 다리 중 하나 광통교(廣通橋) 근처에서 지내면서 장승업(張承業)과 함께 그림을 그리며 지냈습니다. 그는 1891년에 청나라로 가서 상해를 여행하며 새로운 그림을 접합니다. 이후에 국내에 돌아왔다가 중국과 일본으로 떠나기를 반복합니다. 그는 국내로 돌아와 서울의 종로구 청진동의 집에 그림 그리는 공간을 만듭니다. 이곳에서 개인 작업과 제자를 양성하였습니다. 그의 제자로 이도영(李道榮)(1884년~1933년)과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高羲東)(1886년~1965년)이 있습니다, 그는 이처럼 조선 말기에서 근대기까지 화가들의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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